• profile_image by- 최원호
  • 16 Ju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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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호의 독일버스이야기 #003] 취업 성공기와 면접 유형

안녕하세요? 버스라이프 최원호입니다.
최원호의 독일 버스 이야기. 이제 3번째 이야기인데요, 오늘은 취업과정에서 있었던 일들과 면접시 어떤 시험을 치렀는지에 대해 정리를 해볼까 합니다.
 

1. 독일에서의 취업

외국인이 독일회사에 취업하는 것은 바늘구멍에 통과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EU 출신자가 아닌 제 3의 국가 출신자는 더더욱 힘든 것이 독일 노동시장의 특징이며, 독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라 생각이 됩니다.

독일에서 한국인이 취업을 하기 위해선 노동청에서 노동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노동허가를 받으려면 고용계약이 필요하고 / 고용계약을 하기 위해선 회사에서 노동허가를 요구합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싸움이 되는 것이죠. 바로 이것이 첫번째 어려움이며, 두번째 어려움은 노동허가를 받는 그 자체에 있습니다. 독일 노동청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왠만하면 자국민을 우선 고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노동허가를 받기 위해 신청을 하면 바로 노동허가를 내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허가를 신청한 그 회사, 바로 그 직종에  독일 사람을 추천합니다. 그렇게 해서 빈자리가 채워지면 노동허가 발급은 거절이 됩니다. 만약 대기수요에서 충족이 되지 않으면 노동청은 따로 모집공고를 별도로 고시하며 일정기간동안 지원자를 받습니다. 그렇게 해서 빈자리가 채워지면 역시 노동허가 발급은 거절이 됩니다.

독일 노동시장에서 고용계약 우선순위는 자국민 > EU 출신자 > 그 이외의 국가 순서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거나 경쟁률이 높은 자리엔 노동허가 발급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고 봐야 됩니다. 인터넷에 독일 노동허가로 검색을 해보면 정말 많은 한국인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그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따라서 정말 특별한 조건이 성립이 되어야 노동허가가 발급이 된다고 봐야 하는데요,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데 신청자가 그 기술을 갖추었거나, 꼭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한국음식점 같은 경우), 아니면 지원자 숫자보다 모집해야 하는 사람의 숫자가 월등히 많거나 등등등. 좀 특별한 조건들이 성립이 되면 노동허가 발급이 조금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취업에 성공했을까요?

제가 노린 첫번째 공략포인트는 독일 노동허가 발급 조건에 있습니다. 대학교에서 IT를 전공했기 때문에 주위 많은 분들이 독일 IT시장에 일자리가 많을텐데 왜 버스기사를 선택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버스운전이기도 했지만 여러가지 독일의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IT쪽 보다는 버스운전기사로 취업하는 것이 더 성공확율이 높다고 생각을 했고,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게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2012년부터 독일의 IT분야와 버스운전기사 노동시장에 대해 자료를 많이 수집하였습니다. 둘 다 수요가 많은 분야였으나 IT 부분은 역시 전공배출자들도 꽤 많은 편이라 경쟁률이 높다는게 문제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계속해서 IT쪽에서 일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 비해 제가 가진 장점이나 실력을 부각 시키기엔 좀 무리가 있었습니다. 반면 버스기사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은퇴자 숫자가 점점 늘어 2020년까지도 수요가 꾸준한 노동시장이었습니다. 그 당시 자료로 2020년까지 독일 전역에서 약 20,000명 정도의 신규 수요가 필요하다고 정보가 나왔기 때문에 제가 확신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삼고초려, 칠전팔기. 오기로 버티기. 

한국을 떠나 올 때 모든 것을 정리했기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저에겐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자고 물고 늘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여러번 취업에 쓴 맛을 봤을 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제가 입사한 회사가 올 해 은퇴자가 많이 나와 신입사원이 많이 필요한 상태였고 그래서 이미 그리스에서 버스기사를 10명 이상 계약하여 독일로 초청을 한 상태였습니다. 이미 작년 한 해 동한 쉬지 않고 모집공고를 낸 상태였는데다 노동청도 우리 회사가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결격사유 없음 / 바로 일 할 수 있는 준비와 자격을 갖춘 지원자 / 구인난을 겪는 회사.
이 모든 게 맞아 떨어지면서 한국인으로서 노동허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허가를 받기까지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이 소요 되었고 눈물없이 못 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에서 확인하세요)

 

2. 이력서와 면접

- 취업대상 선정하기, 우선순위 정하기
- 이력서 무작정 보내기
- 계속해서 이력서 보내기
- 꼭 가고 싶은 회사엔 이력서 보완해서 또 보내기
- 좌절했지만 오기로 버티기

저의 경우 취업대상을 선정하는 건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독일 전국에 있는 시내버스 회사 리스트를 만들어서 그 중에서 가고 싶은 순서대로 정렬하여 이력서를 일주일에 2~3 곳 정도씩 보냈습니다. 이력서를 보내면 빠르면 2~3주 후 회신이 오며 늦게는 2달 지나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독일 와서 처음 1년 까지는 거의 면접의 기회조차 받아보지 못했구요, 자격을 취득한 이후엔 다행이도 면접 약속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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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력서가 통과되면 회사에서 보내 오는 개인면접 초대장)

저는 최악의 경우 독일 시외버스 회사인 Flixbus(플릭스버스)에 이력서를 넣으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플릭스버스는 버스기사들 사이에 규정을 초과하게 되는 근무시간, 운전 이외의 차량준비,청소 등 모든 걸 혼자서 다 해야하고, 급여는 아주 낮은, 그야말로 악명 높은 회사로 인식이 되어 있습니다. 정작 플릭스버스는 단 한대의 버스도 없기 때문에 플릭스버스와 계약한 하청회사에서 일하게 되는데 저에겐 그리 메리트가 없지만 꼭 독일에서 운전을 해야겠다면 선택해야 하는 마지막 보류같은 존재였죠.

포기하지 않고 이력서를 계속 보내고, 거절 받고, 그러다 면접 약속이 잡히고. 그렇게 이력서를 많이 썼는데 면접은 딱 4군데 봤습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청년들이 아마 이런 실정이 아닐까 생각이 되더군요.

면접을 보게 된 회사는 비스바덴(Wiesbaden) 시청에서 출자하여 운영하는 시내버스 회사, 뮌헨(München) 근교에서 시내버스를 운영하는 작은 개인회사, 뮌헨 시내에 소재한 개인 시내버스 회사, 그 당시 제가 살고 있던 본(Bonn)의 시청에서 출자하여 운영하는 시내버스 회사 4군데 입니다.

그 중 제가 최종 면접에 통과하여 지금 일하고 있는 비스바덴의 시내버스 회사엔 이력서를 3번 썼습니다. 두 번 거절당하고 세번째 이력서에 면접 기회를 받았습니다. 심사관이 이력서 세 번 쓴 걸 알고 있더라구요. 세번째 이력서를 사실 회사에서 거절 할 수 없던 이유가, 첫번째 이력서를 거절 당할 때 우편으로 거절 사유를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결격 사유가 되는 문제를 제가 스스로 해결하여 두번째 이력서를 썼고, 두번째 역시 거절 사유가 우편으로 집으로 왔고, 두번째 결격사유도 스스로 해결하여 세번째 이력서를 보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결격사유가 없었기 때문에 저에게 면접의 기회를 주었던 것 같습니다.

면접도 화기 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잘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자기소개 하고 3번 이력서 넣은 이야기 하고 괜찮은 분위기 속에서 심사위원이 던진 첫번째 질문에 저의 대답이 워낙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에 다른 가따로운 질문이 저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면접은 개인면접으로 진행이 되는데, 앞 순번 면접자들은 면접 후 모두 고개를 저으면서 질문이 너무 까다롭다며 다들 하소연 했던 터라 독일어가 서툰 저에게는 어렵고 긴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행이 제 대답이 최고심사위원의 마음에 쏙 들었는지 다른 후속 질문들 없이 면접이 끝났습니다.

사실 저는 그 회사 때문에 독일행을 결정했기 때문에 저로써는 참 할말이 많은 질문이었거든요. 그 회사가 홍보용으로 올린 유튜브 동영상 때문에 독일행을 결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2012년 부터 지금까지 그 회사의 모든 유튜브 동영상을 다 봤고, 독일 와서 스스로 독일어 공부해서 이력서 넣었는데 나를 떨어뜨리더라. 그래서 결격사유를 보완하여 이력서를 다시 넣었는데 또 떨어뜨렸고, 이젠 모든 자격을 다 갖추어 다시 지원했다. 더 이상의 결격사유도 없고, 당신들 회사 때문에 독일행을 결정했는데,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면접을 보고 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이게 저의 대답이었습니다.

그 대답 후 제가 심사위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비록 처음은 버스기사로 일하겠지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있고 독일의 대중교통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예정이다. 회사에서 교육의 기회가 있는지? 마이스터가 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지? 만약 마이스터가 되면 회사 내에서 업무를 바꿀 수 있는지? 에 대해서 제가 질문을 던졌고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 해졌습니다. 긍정적인 답변이 저에게 돌아왔고 마이스터가 되서 다른 회사로 가는 건 허용을 못해주겠지만 회사 내에서 보직을 바꾸는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기에 저로써도 기분 좋게 면접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은 뭐든 속전속결로 끝나는 게 없어서 이력서 보내면 빠르면 2~3주 내에 회신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회신이 오는데 까지 2달이 넘게 걸린 적도 있었고 면접 날짜를 잡는 것도 바로 되는게 아니라 한달 후로 날짜가 잡히거나  시간 여유를 많이 두어야 합니다. 비자 만료기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저로써는 피를 말리는 싸움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자칫하면 불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버틴 결과 나름 결과는 좋게 나왔습니다. 그 덕에 스트레스로 건강의 악화가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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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개인면접을 위해 독일 여기저기를 다녔던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찍었던 인증샷)

 

3. 면접방식

제가 4군데의 버스회사에서만 면접을 봤기 때문에 모든 버스회사들에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회사 1 (시청출자) : 개인면접 + 실기평가 => 1차합격 후 신체검사
- 회사 2 (개인회사) : 개인면접
- 회사 3 (개인 51% + 시청 49% 출자) : 개인면접 + 실기시험
- 회사 4 (시청출자) : 개인면접 + 필기평가

전반적으로 시청에서 출자하여 설립한 운송회사의 경우 (엄밀히 따지면 시청의 자회사의 자회사 / EU법규상 시청에서 직접 운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면접이 까다롭게 진행된 편이었고 개인회사의 경우는 상당히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개인면접은 1:1 혹은 심사위원이 여러명이 있는 형태였으며 심사위원은 직급별로 골고루 구성이 되어있었습니다. 인사담당자, 결정권자, 노조위원장, 관리직팀장급 등 아마 한국도 이와 많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분은 역시 결정권자겠죠. 그 부분은 한국이나 독일이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질문은 꽤 까다로운 질문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추려보면 왜 지원했는지, 왜 우리회사를 지원했는지가 가장 쉽고도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은 모든 취업준비생들에게 공통점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심사위원을 감동시킬 수 있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 말이죠.

 

4. 실기평가

실기평가는 버스를 운전하는 것인데요, 저의 경우는 지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운전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버스는 문이 잠겨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며 시동이 걸리지 않게 미리 조치를 취해 놓은 상태에서 문제 해결 능력을 보더라구요. 저는 더군다나 한국 버스만 운전해봤기 때문에 독일 버스는 스위치의 위치나 종류들이 한국 버스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 부분이 저에겐 어려운 과제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컴퓨터 시뮬레이터로 벤츠 시타로 버스를 많이 운전해봤기 때문에(좋게 해석하면 이 실기평가를 위해 준비했던) 실기평가에서 나름 척척 해낼 수 있었습니다.

실기평가 시엔 차량의 기능을 적절히 사용하고 스위치의 위치나 작동법을 알고 있는지, 브레이크 및 가속패턴 평가, 규정속도를 잘 준수하는지, 정류장 정차하는 것도 확인하며, 역시 함정 문제도 있습니다. 가서는 안되는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굴절버스 운전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일반버스로 실기시험을 치렀고, 저는 취미이자 직업이 운전이기 때문에 실기평가는 큰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https://youtu.be/MCWIvlbKEBQ 

(동영상 : 평소 컴퓨터 시뮬레이터로 연습? 한 것이 실전에 도움이 되다)

 

5. 필기평가

면접을 보면서 정말 의외였던 순간이었는데요, 4군데 면접 중에서 1군데 회사에서 필기시험을 치렀습니다. 이 한번의 필기시험이 독일 버스회사에 대한 아주 강한 인상을 갖게 했는데요, 시험은 A4 용지로 대략 10장 내외 였던 것 같습니다. 역시 독일어가 시험의 발목을 잡지 않았나 생각이 들던 순간입니다. 첫번째 문제는 문제 유형도 모른채 10문제를 풀었기 때문에 거의 다 틀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의 종류는 기억력 + 수학능력 + 버스규정 등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의 유형도 모른 채 풀었던 문제는 바로 기억력 문제였는데요, 심사위원이 3분을 준다는 얘기는 이해를 했는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된다는 건 이해를 못했습니다. 3분내에 글을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지문은 있는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순간 많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고, 지문을 읽으면서도 도대체 문제가 무었이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걸까 고민하는 통에 지문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기억력 문제는 A4 첫번째 장에 지문만 서술되어 있습니다. 수학능력시험 국어문제에 나오는 지문과 비슷하다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냥 한 장의 소설이 쓰여 있습니다. 그 내용을 서울시내버스로 각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은 빨갛고 하얀버스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서울역 환승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남대문로에서 좌회전하여 서울역 환승정류장 B2에 정차하였습니다. 정차 후 승객승하차를 시켰는데,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이 모두 하차한 후 초록색 잠바를 입은 승객이 앞문으로 타면서 티켓을 구매하였습니다. 파란색 잠바를 입은 승객은 뒷문으로 승차하였고 그 승객을 따라서 20명의 승객이 탑습하였습니다. 승객이 모두 탑승한 후 검게 어두워지는 남쪽 방향으로 버스를 몰았고 서울역 다음 정류장에서 2명의 승객이 탑승하였습니다. 그 다음 정류장에서 3명의 승객이 탑승하였고, 이 후 용산로로 우회전 하였습니다. 좁은 골목길에 기아자동차 K5가 주차되어 있어서 버스가 통과하는 데 애를 먹었고 3분 지연운행이 되었습니다. 다음 교차로에서는 현대자동차의 i30 cw 차량 때문에 교차로 통과시 신호를 두번 대기해야 만 했고 

...... 중간 생략 .....

버스는 이제 종점인 중앙대학교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종점 2정거장 전인 한강대교 정류장에선 초록잠바입은 승객과 함께 5명의 승객이 내렸고 버스는 4분 지연된 상태였습니다. 종점 1정거장 전엔 파란 잠바 입은 승객과 다른 4명의 승객이 하차하였고 버스는 5분 지연 상태가 되었습니다. 종점이 중앙대학교에 도착 후 모든 승객이 내렸고 버스는 4분 지연 상태로 운행을 종료하였습니다.

 

A4 첫번째 장에 서술된 글을 읽는 시간은 딱 3분만 주어졌고, (근데 독일어로 쓰여있고 독일 도로명이 등장하는 게 저에겐 어려움이죠) 3분 후 지문은 다시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총 10개의 문제가 나왔고 문제는 이런식입니다.
1. 당신은 하얗고 빨간 버스를 운전하여 남대문로에서 서울역환승정류장으로 운행하였습니다. (맞다 / 틀리다)
2. 서울역 환승정류장 B1에서 가장 먼저 탑승한 승객은 파란색 잠바를 입은 승객이었고 총 21명의 승객이 탑승하였습니다. (맞다 / 틀리다)
3. 서울역 환승정류장 통과 후 용산로에서 기아자동차 K5 때문에 3분 지연되었습니다. (맞다 / 틀리다)
...

뭐 이런식의 문제입니다. 문제를 풀면서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 시내버스를 운전하면서 요즘 느끼는 건데 기억력과 관찰력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리 모의고사를 봤다면 문제의 유형과 어떻게 풀면 되는지 감을 잡았겠지만 그 당시엔 너무나 당황하기도 했고 독일어 초급자가 3분이내에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지문이었기 때문에 절반은 이게 맞는지 틀린지 확신이 안서는 상태였고 절반은 지문을 읽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냥 틀릴 수 밖엔 없었습니다.

수학능력을 보는 문제는 단순 덧셈이나 뺄셈을 떠나 좀 복잡하게 꼬아진 덧셈 뺄셈이거나 넌센스 같은 수학문제도 있었습니다.
8 24 12 36 18 ? 그 다음에 올 숫자는? 이런 문제도 있었습니다.

버스규정과 관련된 문제는 사고 발생시 처리 요령, 처리 순서에 관한 문제도 있었고, 자전거가 타고 있는 상태에서 유모차가 버스에 탑승하기 원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승객이 버스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하차를 요구하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실제 버스 운행 시 발생할 수 있는 예제들이 문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6. 신체검사

첫번째로 면접을 본 회사에서 면접 1주일 후 1차 합격 통보가 왔고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편지가 왔습니다. (독일은 아직도 종이문서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신체검사 날짜가 2달 후 입니다. 독일 병원에 진료를 받기 위해 예약전화를 하면 보통 한 달, 두 달 기다리는 건 예사로 알고 있었지만 비자 만료를 앞 둔 상태에서 두 달을 기다려야 하는 건 너무 가혹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사이 다른 회사에 계속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봐야 할 지, 아님 그냥 맘편히 기다릴 지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만에 하나 신체검사에서 떨어지면 비자만료시까지 시간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땐 무조건 한국으로 쫒겨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이. 생각만 해도 아찔한... 그 덕에 스트레스 많이 받고 건강 악화되고, 참 고달팠던 시간이었습니다.

시력검사, 시야범위검사, 신체반응검사, 폐활량 검사, 피 검사, 소변검사 등등 상당히 여러 항목에서 까다롭게 검사를 합니다. 이 신체검사는 승용차 운전자가 면허 취득시 하는 신체검사와는 다르며 버스운전자의 경우 기준도 더 까다롭습니다.

시력의 경우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며 시력기준 미달 시 시력보호도구(안경, 콘텍트렌즈 등)를 착용하는 것이 운전면허증에 기록까지 됩니다. 저는 시력이 좌 0.8, 우 0.75가 나와서 저의 경우 안경을 쓰고 운전을 해야 합니다. 만약 안경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나게 되면 제가 피해사고라도 과실이 크게 잡힐 수 있습니다.

시야의 범위도 상당히 중요하게 평가하는 데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시야범위 외에 꼭 봐야 하는 시야범위에서 결점은 없는지 체크를 합니다. 사람마다 보는 시야범위가 다르고 사람마다 보지 못하는 시야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꼭 봐야하는 시야 포인트인데 그 포인트를 보지 못하는 경우는 결격사유가 됩니다.

폐활량 검사는 저는 해본 적이 없어서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는데요, 원래 폐활량이 낮은 건지 아니면 제가 잘못한 건지 모릅니다. 그냥 해본 적이 없어서 못했다라고 위안삼고 있습니다.

 

** 최종합격

독일온 지 1년 4개월만에 최종 입사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최씨 고집 부려서 독일에 무작정 와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합격통지를 받는 순간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고생한 보람도 느꼈고, 하면 된다라는 신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고, 자신감도 보상받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합격 통지 후 출근까지는 1주일. 여유 부릴 틈도 없이 바로 출근해야 했습니다. 우선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스바덴에 집도 구해야 했고, 비자도 10일 후 만료되기 때문에 비자연장도 해야 했고, 1주일안에 많은 걸 해야했던 시간이었지만 모두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회사 출근 후 노동허가 없는 것이 문제가 되어 입사취소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일이 쉽게 풀리면 독일이 아니죠.

 

서러움의 한 달을 버티다.
고용계약서 취소하고 노동허가가 나오면 회사에 다시 와라.

노동허가 없이 일을 하는 것은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저의 고용계약서는 취소를 해야만 했습니다. 입사 통보를 받고 일주일만에 출근을 했기 때문에 노동허가와 노동비자를 준비할 시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것이 문제가 되었고 회사에서는 노동청 승인이 떨어지면 그때 고용계약서 다시 쓰자고 하며 기존의 고용계약서는 취소를 해야만 했습니다.

노동허가와 노동비자를 받으면 다시 회사에 와서 그 사실을 알리면 그때 고용계약서를 다시 써주겠다며 그때까지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며 저를 돌려보내려 했습니다.
제 입장에선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기 때문에 월급 안받아도 좋고, 방문객 신분으로라도 회사에 출입할 수 있다면 남들 교육받을 때 깍뚜기로 끼겠다고 미친 베짱을 부리고 한 달을 서럽게 버텼습니다.

약 한달동안 방문객 신분으로 남들 교육 받을때 같이 참석하였고 다른 신입사원들은 사수를 배정받아 1:1로 따라다니며 교육받는 중에도 저는 그냥 어깨너머로 따라다니며 학습했고, 남들 쉬는 시간엔 혼자 개인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노선 및 지리를 익혔습니다. 나이 40에 이런 서러움을 겪어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포기할까 고민이 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러움의 한 달을 버틸때 쯤 외국인청에서 노동허가가 나왔다는 연락이 왔고 노동이 가능한 비자로 갱신을 해 준 끝에 정식으로 고용계약 하고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도 하루 이틀 나오다 안나올 줄 알았는데, 한 달 꼬박 지각없이 열심히 출근한 것을 고맙게 생각해주었고 그로 인해 좋은 이미지를 각인 시키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국인의 의지와 능력을 보았다며 한국에서 버스기사들 열댓명 좀 데리고 오라는 농담까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젠 독일 회사에 발을 붙였으니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틈틈히 공부하고, 한단계 한단계 또 차례차례 올라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운전하는 것 자체가 취미이자 좋아하는 일이라 현실에 만족하고 그냥 이 자리에 머무르면서 쉬고 싶은 생각이 많지만, 진정한 버스전문가가 되겠다는 초심이 있으니 다시 또 도전을 준비해야겠죠? 다음 목표인 마이스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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